이탈리아 돌로미티 세 번째 이야기는 알타비아Alta Via No.1 트레킹이다. 알타비아는 돌로미테산군의 여러 트레일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코스로 영어로는 ‘하이 루트High Routes’. 90km에서 190km에 이르는 10개의 알타비아 코스가 있으며, 그중 가장 대중적이고 인기 있는 루트가 알타비아 No.1. 브라이에스호수Lago Di Braies에서 벨루노Belluno까지 돌로미테를 북쪽에서 남쪽으로 종주하는 트레일이다. 총 거리는 약 150km. 하루에 15~20km 정도를 산장과 산장 사이를 이어 걷는 헛투헛hut to hut 트레일이다.
거대한 암릉, 깎아지른 절벽, 만년설, 짙은 초록의 숲이 이루어내는 절묘한 조화가 빚어낸 비현실적인 돌로미티 풍경의 진수를 맛보기에 가장 좋은 코스는 바로 알타비아 No.1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20년에 알타비아 No.1 트레킹을 계획하고 산장예약까지 모두 마친 상태에서 코로나 팬데믹으로 계획을 취소해야 했던 그 길에 서니 감회가 새롭다.
1일차 브라이에스호수Lago di Braies~포다라 베드라산장Rifugio Fodara Vedla, 약 12km
브라이에스호수에 도착해서 본격적인 트레킹을 시작하기 전 간단하게 점심식사를 하고 식수도 보충했다. 들머리로 들어서기 전에 호수 둘레길을 유유히 산책하며 여유를 즐긴다. 잠시 후면 고도를 1,500m 이상 올려야 하지만 아직까지 전혀 실감이 들지 않는다.
드디어 들머리. 초반부터 엄청 가파르다. 태백산을 바닥부터 올라가는 것이다. 엄청난 업힐에 배낭이 무거우니 더욱 힘들 수밖에. 삭막한 돌길이지만 풍광은 참으로 멋지다. 저 멀리 발아래로 방금 지나왔던 브라이에스호수가 보인다. 다양한 들꽃들이 등로 곳곳에서 반겨준다.
해발 2,000m를 넘어서니 그늘은 예상 밖의 눈 구간. 한여름인데도 불구하고 꽤 길게 잔설구간이 이어지다가 이젠 너덜구간이다. 첫날부터 쉽지 않다. 소라 포노고개Forcella Sora Forno(2,388m)를 넘어서니 비엘라산장Rifugio Bella이 보인다. 내리막길로 들어선 순간 발에 모터가 달린다.
비엘라산장에서 걸어온 길을 바라보니 산의 모양이 참 특별하다. 빗살무니 표면이고 삼각형 모양이다. 갑자기 페이스트리 빵이 생각난다,
작은 언덕과 세네스산장을 지나니 내리막길에 초원과 노란 꽃밭이 광활하게 펼쳐진다. 소라 포노고개를 넘었던 수고에 대한 보상이다. 어느새 첫날 숙박지인 포다라 베드라산장에 도착했다.
2일차 포다라 베드라산장~라가주오이산장Rifugio Lagazuoi, 약 20km
오늘은 어제보다 거리도 길고 고도를 1,700m 이상 올려야 하는 쉽지 않은 날. 출발 전부터 긴장 백배. 든든하게 아침도 잘 챙겨 먹었다. 페데루Pederu까지 한참을 내려갔다가 다시 오름짓. 파네스산장Rifugio Fanes을 지나니 평원이다. 아직까지는 순조롭다. 고개를 넘으니 너른 평원에 소들이 많이 보인다. 돌로미티는 바위가 많은 산악지대이지만 사이사이 초지에서 소들을 방목하는 모습을 쉽게 만난다.
라가주오이호수로 오르는 길. 궤적에는 라가주오이호수 왼쪽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는데 어쩌다 보니 나는 오른쪽으로 접어들었다. 동행을 만나지 못할까봐 걱정했는데 이분들도 호수 오른쪽에서 간식 타임을 가지고 있어 합류했다.
라고고개Forcella del Lago에 올라섰다. 저 아래에 호수가 보인다. 호수 계곡 너머에 까마득하게 멀리 오늘의 목적지인 라가주오이산장(2,752m)이 보인다. 정신이 몽롱해질 정도로 까마득하지만 한발 한발 옮기다보면 어느새 그곳에 도착하겠지. 호수까지 지그재그로 이어진 길은 미끄럽고 경사도가 상당해서 무척 위압적이다. 내리막이지만 속도를 내기엔 참으로 위험하다. 호수에 도착해서 잠시 호흡을 고르며 간식시간을 가진다.
라가주오이산장으로 오르는 길은 눈도 많이 쌓여 있고 바람도 심하게 분다. 생각보다 무척 춥다. 산장은 저만치 보이는데 경사도가 너무 심해서 계속 제자리를 걷는 느낌이다. 이곳에는 중간에 굴이 꽤 많다. 제1차 세계대전 때 이탈리아와 오스트리아 전쟁 중에 만든 것이라고 한다. 굴속으로 들어가 보니 절벽 아래로 반대편이 훤히 들여다보인다. 아찔하다.
드디어 산장 도착. 정상 뷰가 멋진 곳인데 구름에 쌓여서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다. 샤워한 후에 동행들 몇 사람이 고소를 호소한다. 아마 그리 높지 않은 곳이라 신경을 쓰지 않았나보다. 마침 내가 가지고 있던 고소약으로 도움을 줄 수 있어서 다행이다. 저녁 식사도 못 하고 그대로 쉬겠다고 하니 상태가 경미하진 않은가보다.
돌로미티는 바위가 많은 산악지대이지만 사이사이 초지에서 소들을 방목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3일차 라가주오이산장~크로다호수산장Rifugio Croda da Lago, 약 16km
아침까지 안개가 많이 끼어 있어서 일출은 포기했는데 잠시 하늘이 열렸다. 다들 조금 있으면 보이지 않을 거라고 포기했는데 나는 보이지 않아도 끝까지 올라가고 싶었다. 사진으론 주변 풍경이 보이지 않지만 내 눈에는 모든 것이 들어왔다.
출발 시간에도 조망은 좀처럼 열리지 않는다. 아쉬운 대로 산장 앞에서 단체 사진을 찍고 출발한다. 길이 미끄럽고 바로 앞도 보이지 않으니 조심 또 조심. 고도가 낮아지니 조금씩 안개가 걷히고 시야가 조금 맑아졌지만 아직까지 바람은 무척 심하다. 조망이 조금 열리니 걷는 즐거움이 배가 된다.
이렇게 바람이 심하게 부는데도 케이블카가 운행된다. 어제, 오늘 힘들게 걸어서 오르내린 라가주오이산장은 케이블카를 타면 순간 이동이 가능하다.
비가 조금씩 흩날리다가 아베라우고개Forcella Averau에 가까워지니 빗줄기가 굵어진다. 이정표도 잘 보이지 않을 정도. 아베라우산장(2,413m)에서 차가워진 몸도 녹이고 간단한 식사를 하고 나오니 날이 조금 개었다. 감사할 따름이다.
계곡 저편으로 다섯 개의 암봉으로 이루어진 친퀘토리Cinque Torri가 보인다. 푸른 초원에 우뚝 선 친퀘토리. 주변 산군이 구름 속에 숨었다 나오기를 반복한다. 영상으로만 보던 친퀘토리 앞에 섰음이 자랑스럽고 감개무량하다, 친퀘토리산장(2,137m)에서 점심을 먹고 휴식을 취하고 나니 컨디션이 조금 회복되었다.
말가 프렌데라를 지나 펠모산 앞으로 펼쳐진 초원이 참으로 평화롭다.
파소 지아우Passo Giau로 내려가는 등로엔 빗물이 많아서 상당히 미끄럽다.
이제 3일차인데 연일 강행군이다. 경사도 가파르지만 작은 돌이 가득한 길이라 걷기가 쉽지 않다. 전망대에 오르니 코르티나 담페초Cortina d’Ampezzo가 쫘~악 펼쳐진다. 이 맛이다. 이제부터는 완만한 내리막. 모처럼 긴장감을 풀고 산책하는 마음으로 길을 걷는다.
크로다호수 바로 옆의 산장이 오늘 숙소이다. 경치는 좋은데 산장시설이 너무 열악하다. 방도 무척 좁고 충전도 복도에서 공동으로 사용하는 멀티탭을 사용해야 한다. 하지만 산 중에 이런 숙소라도 있는 게 감사하다.
4일차 크로다호수산장~티씨산장Rifugio Tissi, 약 21km
오전 5시 기상! 아침에 호숫가를 한 바퀴 걸었다. 호수 반영이 참 예쁘고 새소리가 청아하다. 크로다호수산장의 아침식사는 의외로 간단하다. 숙박객이 많은데 아침식사 시간은 짧고 장소는 좁아서 조금 북적거린다.
오늘 경로는 업다운이 심하지만 혼자 걷는 길이 아니니 걱정은 금물이다. 베코 디 메조디Becco di Mezzodi로 가는 길은 완전 돌길이지만 경사도는 완만하다. 계곡 사이로 넘어 가는 길이 까마득하다. 다행히 날씨가 오랜만에 쾌청해서 멋진 경치를 즐기며 걷는다. 산허리를 돌아서 내려오니 이젠 초원지대, 주변은 온통 목장이다.
트란스치베타 산악러닝 대회 기념게이트, 트란스치베타 산악러닝 대회는 알타비아 No.1의 오르막 경로를 따라 약 23km를 달리는 경기이다.
암브리졸라고개Forcella Ambrizzola(2,277m)를 넘어서 오르내림을 반복하며 걷다 보니 피우메산장Rifugio Citta di Fiume이다. 이곳에서 잠시 휴식하고 점심으로 먹을 샌드위치를 포장했다.
스타우란자산장Rifugio Passo Staulanza까지 걷는 길은 꽃길이다, 꽃길을 걷고 달달한 아이스크림까지 먹고 나니 세상 모든 행복은 지금 여기에 있는 듯하다.
스타우란자산장을 지나면서 한참동안 아스팔트길을 걸었다. 땀을 한 바가지는 쏟은 것 같다. 콜다이산장Rifugio Coldai으로 오르는 길에 폐점한 산장 앞에서 간단하게 포장해 온 샌드위치로 점심식사를 하면서 식수도 보충했다.
콜다이산장에 도착. 아주 멋진 말레가산을 조망하며 맥주 한 잔. 아이스크림에 맥주까지. 오늘은 참으로 호사스러운 날이다. 아직까지 컨디션은 좋은데 콜다이산장부터 티씨산장까지도 쉽지 않은 길이라고 하니 은근 걱정 된다.
호수 반영이 예쁜 크로다호수산장.
언덕에 올라서니 콜다이호수가 펼쳐진다. 호수가 참 고요하다. 호숫가에는 삼삼오오 휴식을 취하는 이들이 많다. 이곳에서 잠시 쉬어가면 좋겠지만 갈 길이 멀다. 호수 곁으로 거친 업힐이 이어진다.
콜 네그로고개Forcella Col Negro를 넘어서니 아직 잔설이 많이 남아 있다. 귀떼기청 같은 돌길이 꽤 길게 이어진다. 그나마 경사가 심하지 않아서 다행이다.
언덕 위에 티씨산장이 보인다. 티씨산장까지 불과 1km도 남지 않았다. 티씨산장에서 트레일 러닝 하는 사람들이 무서운 속도로 뛰어내려온다. 바로 그 길에 천상의 화원처럼 꽃밭이 펼쳐져 있다. 자연스럽게 배낭을 풀고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산장이 저만치 보이니 조금 쉬어 가리라. 타임랩스를 찍고 꽃과 암봉을 함께 사진에 담으며 어찌나 즐거운지. 아무도 없는 공간이라 더 행복하다. 꽃놀이 삼매경에 취한다.
드디어 티씨산장. 온수로 샤워를 하고 나니 몸이 날아갈 것처럼 가볍다. 계곡물이 콸콸 쏟아지는 수돗물로 빨래까지 마쳤다. 내일 아침까지 마르지는 않겠지만 깨끗한 옷을 보니 기분이 좋다.
치베타산Monte Civetta의 돌산에 노을이 깃든다. 빨래하면서 세팅해 놓은 타임랩스에 아주 멋지고 근사한 일몰 영상이 남겨졌다.
티씨산장의 저녁식사는 아주 훌륭하다. 간도 세지 않고 모든 음식이 깔끔하다. 양배추 샐러드는 무한리필. 돌로미티 트레킹하면서 먹지 못했던 야채를 듬뿍 먹었다. 참 행복한 날이다.
돌로미티의 풍광을 바라보며 한 잔의 맥주를 들이키는 산장에서의 휴식은 달콤하기 그지없다.
5일차 티씨산장~카레스티아토산장Rifugio Carestiato, 15km
아침 일출은 조금 실망스러웠지만 산장 뒤의 언덕에 올라가서 본 조망은 완전 최고. 저 아래는 알레게호수Lago di Alleghe와 마을이 한 폭의 풍경화처럼 어우러진다.
오늘은 주행거리가 짧아서 다행이다. 바졸레르산장Rifugio Vazzoler까지 한참을 내려간다. 고도가 낮아지니 나무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산장에 도착하니 인터넷도 열린다. 문명의 세계로 들어서니 다들 바빠진다.
산장에서 내려와 삼거리에서 계곡으로 들어서니 너덜길이 시작되고 끝없이 이어진다. 정말 지루한 길이다. 마치 나의 인내심을 테스트하는 것 같다. 돌로미티는 돌길의 연속이다.
고도가 낮아지니 걷는 것은 쉬운데 날씨가 너무 더워서 숨쉬기 힘들다. 거리가 짧다고 식수를 많이 준비하지 않아서 더 걱정이다. 잘못하면 점심도 굶어야 한다. 잠시 숲길이 나와서 길이 좀 편해질 거라 생각했는데 완전 착각. 너덜길이 계속된다. 가끔씩 나오는 산장 이정표엔 거리가 표시돼 있지 않아서 답답하기 그지없다. 식수가 부족해서 몇 분은 물을 뜨러 아래로 다시 내려가셨고 나머지 산우들은 휴식을 취하며 기다렸다.
산을 넘어서면 산장이 있을 줄 알았는데 산허리를 몇 개 넘어섰는지도 모르겠다. 가도 가도 끝없다. 거리가 짧다고 결코 쉬운 길이 아니다.
힘겹게 소라 포노고개를 넘어서면 빗살무늬 삼각형 산인 지코벨이 곁에 있다.
6일차 카레스티아토산장~아고르도Agordo, 13km
알타비아No.1 트레킹 마지막 날. 다음 산장 예약을 못 해서 탈출 교통편이 가장 용이한 파소듀란에서 알타비아 No.1을 마치기로 한다. 발걸음이 무척 가볍다. 듀란산장까지는 한달음에 내려왔다. 뒤로 보이는 듀란산이 참 웅장하다.
아고르도를 향해 임도길을 따라 걷는다. 산길이 아니니 땅을 주시하지 않아도 되어서 좋긴 하지만 지열까지 더해지니 무척 덥다. 첫 번째 숲길 찾기는 실패. 너무 더워서 계곡 길로 들어섰지만 길이 막혀서 다시 올라오는데 정말로 힘들었다. 하마터면 사고 날 수도 있는 길이었다.
두 번째 도전은 성공, 숲길이 험하지도 않아 좋다. 충분히 즐기면서 걷는다. 끝이라 생각하니 마음의 여유도 생긴다. 무엇보다 트레일 표시가 있어서 마음이 놓인다.
주인 없는 집의 마당에서 잠시 휴식. 한여름 더위와 싸우는 것도 쉽지 않다. 다시 숲길을 걷다가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조금 호사를 부린다. 1주일간 수고했던 발이 이제야 비로소 자유스러워진다.
아고르도에 도착해서 버스를 타고 벨루노로 이동한다. 이로써 알타비아No.1이 끝났다. 산장과 산장 사이를 걸으며 화려하게 빛나는 거대한 암산들과 자연 풍경에 취한 지난 6일의 여정이 파노라마 영상으로 흘러간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시간이었다.
월간산 4월호 기사입니다.
출처 : 월간산(http://sa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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